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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th
The CAU
100th
Anniversary
News Letter
The CAU는 2018년 개교 100주년을 중앙가족과 함께하기 위하여
100주년 기념사업단에서 발행하는 온라인 뉴스레터입니다.
Think 100
최초를 탄생시키는 명문사학 ‘중앙’의 저력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시기를 거쳐 21세기 치열한 교육혁명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이는 크고 작은 파랑에도 굳건히 한 세기를 살아온 중앙대학교. 긴 세월 동안 중앙의 인재들은 대한민국 곳곳에서 경제와 산업의 발전, 문학과 예술의 향연,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공헌하며 모교에 ‘명문 사학’이라는 영예를 안겨다 주었다.
이번 뉴스레터 10호에서는 25만 중앙인 가운데 최초의 기록을 남긴 중앙인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인 최초의 Asia Society ‘2005년 올해의 인물’ - 이종문(법학 48) 동문

이종문 동문은 아메리칸드림 1세대로 손꼽히는 진정한 벤처기업인이다. 모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국내 제약회사 임원으로 지냈고, 1966년부터 1969년까지 제4대 모교 총동창회장을 역임하면서 1968년 청룡상 건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70년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 1982년 당시 55세의 나이로 컴퓨터 그래픽 카드제조회사인 다이아몬드컴퓨터시스템을 세워 실리콘밸리에서 이름을 날렸다. 이후 회사 경영권을 직원들에게 물려주고 벤처캐피탈 회사인 암벡스벤처그룹을 설립, 신규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등 실리콘밸리 IT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아울러 1995년에는 이종문 재단을 세우고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재정적으로 난관에 봉착한 샌프란시스코 아시아예술박물관에 1,600만 달러를 기부했고, 샌프란시스코 시의회는 박물관에 그의 이름을 새겨 ‘이종문 아시아 예술 문화센터’(Chong-moon Lee Center for Asian Art & Cultural Center)로 명명했다. 미국의 석조 공공 건물에 아시아인의 이름이 새겨지기는 李 동문이 처음이다.
2005년, 李 동문은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Asia Society ‘2005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고 “창업주도 중요하지만 회사에 청춘을 바친 종업원들은 더욱 중요하다.”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아시아인 최초의 미국 연방 하원의원(3선) - 김창준(법학 55) 동문

김창준 동문은 미국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최초의 아시아(한국)인이자, 국외에서 정치적 공직에 선출된 최초의 한국인이다. 1955년 모교 법학과에 입학한 후, 1961년 도미하여 남가주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다.
1976년 金 동문은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JAYKIM Engineers’를 설립했다. 회사는 130여명의 직원과 미국 서부 3개 주에 사무소를 둔 기업으로 성장했고 ‘미국의 500대 기업’에 선정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발판으로 삼아 1990년, 로스앤젤레스 교외의 Diamond Bar의 시의원이 되었고 이듬해 시장에 당선되었다.
1992년 金 동문은 1992년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하원 의원에 당선되었고, 이 후 3선을 역임했다. 로스앤젤레스지부 모교 동문회장을 역임하며 모교 동문으로서의 소속감과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것은 물론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권익 향상에 큰 기여를 했던 金 동문은 현재 ‘김창준 미래한 미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인 최초의 아시안게임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 故 이창훈(상학 58) 동문

故 이창훈 동문은 한국인 최초의 아시안게임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이다. 1958년 모교에 입학하자마자, 제3회 도쿄 아시안게임 마라톤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었다. 하지만 1958년 2월, 훈련 도중 교통사고를 당해 종아리근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게 되었다. 대회를 앞둔 상태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2개월의 입원 끝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때는 이미 대회가 한 달 보름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대회가 열렸던 1958년 5월 29일, 도쿄는 30년만의 무더위로 푹푹 찌는 날씨였다. 부상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악전고투한 그는 결국 1등(2시간 32분 55초)으로 결승점을 밟으며 그대로 실신해 2시간 여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모든 체력을 레이스에 쏟아 부은 결과였다. 대한민국은 마라톤 우승 소식으로 인해 기쁨의 도가니에 빠졌다. 식민지 지배를 받은 뒤 처음으로 일본인과 대등하게, 그것도 그들의 수도인 도쿄에서 기량을 겨루는 한판 승부였기 때문에 국민들은 더욱 환호했다.
故 이창훈 동문은 1965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1977년부터 1995년까지 대한육상경기연맹 전무이사를 역임하며 한국 육상 발전에 기여했다.
2004년 1월 13일 그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많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자랑스러운 중앙인이다.

아시아인 최초의 세계행정학회(IIAS) 회장 – 김판석(행정학 75)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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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석(행정학 75) 동문

김판석 동문은 현재 인사혁신처 처장을 맡고 있다. 모교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플로리다 국제대 행정학 석사, 미국 아메리칸대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 연세대 정경대학 글로벌행정학과 교수가 되었고 2003년 대통령비서실 인사제도비서관, 2009년 한국인 최초로 UN행정전문가위원회 위원, 2010년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행정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국제적으로 행정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행정가 또는 행정학자 1인에게 수여하는 미국 행정학회 공로상 ‘폴 P반 라이퍼 상’(Paul P Van Riper Award for Excellence and Service) 역시 한국인으로서는 김판석 동문이 첫 수상자였다.

한국인 최초의 여성 UN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본부 국장 - 최수향(심리학 79)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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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향(심리학 79) 동문

최수향 동문은 한국인 최초의 여성 UN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본부 국장이다. 모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앨버타대 교육심리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3년 한국교육개발원(KEDI) 계약직 연구원으로 시작하여 1997년 파리 UNESCO 본부 파견을 거쳐 1998년 UNESCO 본부의 취학전아동교육과장에 정식 임용되었다.
그 후 2012년, 국장급(D1) 여성 고위임원은 14명에 불과한 UNESCO에서 최수향 동문은 한국인 최초의 여성 국장직에 오른다. 현재 최수향 동문은 화교육과 글로벌시민교육, 지속가능개발교육을 총괄하는 부서를 맡고 있다.

이 외에도 한국인 최초의 세계스카우트 이사회 의장 : 이항복(건축공학 72) 동문, 아시아인 최초의 영국 디자인학회 최고 명예석학 : 이건표(공예 74) 동문, 대통령 표창 ‘올해의 이민자 상’ 최초 수상자, 특별공로 귀화자 2호 : 배현정(의학 79) 동문, 한국인 최초의 칸 영화제 단편부문 황금종려상 수상 : 문병곤(영화학 02) 동문, 아시아인 최초의 Jaguar 社 여성 외장 디자이너 : 박지영(산업디자인 07) 동문, 아시아인 최초의 ‘마빈 햄리시 영화음악 작곡 콩쿨’ 입상 : 윤미화(작곡 09) 동문 등 최초의 기록을 남긴 수 많은 중앙인들이 있다.

최초를 만드는 크리에이터, 꿈을 위해 질주하는 도전자, 새로운 길을 여는 개척가, 사회적 책임을 다 하는 기여자, 화합과 통합을 이끄는 리더.
명문 사학 ‘중앙’은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도 더 많은 기회와 도전들을 모든 중앙인들과 함께 만들어나갈 것이다.

Look 100
The 100-years History for CAU

1990년대 들어서면서 대학은 상호간의 경쟁 속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공과대학 C급 판정 사태로 인해 학교발전에 대한 문제점들이 가시화되고, 학생들은 재단이 제시한 마스터플랜의 철저한 실현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재단의 미약한 발전의지는 학교 발전을 정체시켰으며 한편으로는 학내 구성원간에 새로운 발전을 위한 움직임을 형성했다.


중앙대학교
중앙 100년의 기록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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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 02.820.6911~6912
중앙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단


People 100
故 홍소운(영문 45학번) 동문

故 홍소운 동문님은 모교 영문과 1기 졸업생으로 1950년 졸업하자마자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여군학교 초대 교관과 여군 훈련소장을 거쳐 1968년 중령으로 예편했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왔던 故 홍소운 동문님은 전역 후 국가보훈처에서 지급하는 연금만으로 생활해왔고, 군 시절부터 몸에 밴 강인함과 절약 정신으로 난방도 하지 않았으며 시장에서 ‘떨이’로 파는 식재료만 구입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했습니다.

2006년 11월, 故 홍소운 동문님은 `자린고비' 생활로 간신히 마련한 집이지만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모교에 기증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후 故 홍소운 동문님의 양녀인 이신복씨는 2007년 11월, 어머니의 유언대로 서울 송파구에 있는 아파트(6억원 상당)를 어머니의 모교인 중앙대학교에 기증했습니다.

모교는 법학관(303관) 2층 209호 강의실 앞에 얼굴과 이름을 새긴 동판을 세웠고, 故 홍소운 동문님의 모교 사랑을 기리고 있습니다.
자신이 평생 일궈놓은 전 재산을 모교에 기증한 故 홍소운 동문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故 홍소운 동문님을 뉴스레터 10호의 People100에 선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