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법학과·행정학과의 발전과정

11956년, 이리분교 법학과 법정대학 학생들
1940년대 후반,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벗어나면서 새로운 민주국가로 탄생하기 위해 진통을 겪고 있었다. 정치에 직·간접으로 참여하는 권리와 함께 법치국가의 기틀을 세우는 민주시민의 양성을 위해 정치학과 법학의 교육이 시급히 요청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1948년 8월 중앙문화학원은 이사회를 열어 문학부를 법정학부로 개칭하고 법정학과를 설치하기로 결의하고 10월에 법정학과 학생 모집을 실시하였는데, 모집인원 160명에 7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보였다.
1949년 5월 24일 교육부 인가를 받은 법정학과 신설에 따른 시설 확충과 종합대학교 승격을 위해 1949년 3월에 희락관 건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새로이 건축한 희락관은 6.25 전쟁 직전인 5월 15일에 준공되었는데 당시의 학생들은 이 새 건물에서 불과 2주일 동안 공부하다가 전쟁을 피해 부산 송도로 학업 장소를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 중에서도 법학교육은 계속되었는데 1951년 10월 31일 개교한 이리분교에서 박광서 교수가 법률연습, 법제사, 법률사상사, 로마법을 담당하였고, 박창건 교수는 민법연습, 민법3부, 민법4부 등을 가르쳤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1948년 8월 중앙문화학원은 이사회를 열어 문학부를 법정학부로 개칭하고 법정학과를 설치하기로 결의하고 10월에 법정학과 학생 모집을 실시하였는데, 모집인원 160명에 7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보였다.
1949년 5월 24일 교육부 인가를 받은 법정학과 신설에 따른 시설 확충과 종합대학교 승격을 위해 1949년 3월에 희락관 건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새로이 건축한 희락관은 6.25 전쟁 직전인 5월 15일에 준공되었는데 당시의 학생들은 이 새 건물에서 불과 2주일 동안 공부하다가 전쟁을 피해 부산 송도로 학업 장소를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 중에서도 법학교육은 계속되었는데 1951년 10월 31일 개교한 이리분교에서 박광서 교수가 법률연습, 법제사, 법률사상사, 로마법을 담당하였고, 박창건 교수는 민법연습, 민법3부, 민법4부 등을 가르쳤다.
21957년 세계인권선언 7주년 모의재판
1952년에 법정과(법학전공,정치학전공)를 법학과로 변경하고 1953년에 문학과, 교육학과, 법학과로 구성된 법문학부를 법학과와 정치외교학과로 구성된 법정대로 편제를 변경하였다. 법정대는 1954년에 다시 법정대학으로 대학 명칭을 변경하였다. 법정대학에는 법학과, 정치학과 뿐만 아니라 행정학과, 신문방송학과가 설립되어 함께 편제되었는데 1968년에 행정학과와 함께 다시 법과대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55년에는 우리나라 사립대학에서는 최초이자 전국에서 3번째로 법정대학 내에 행정학과가 설립되었으며 1983년에는 안성캠퍼스에 행정학과를 설치하였다.
3법과대학 학생들이 사용한 뱃지
우수한 교수진과 학생들로 구성된 법학과와 행정학과는 로스쿨이 개설된 대학에서는 더 이상 학부 과정의 법학과를 모집하지 않음에 따라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타 대학과 마찬가지로 2009년부터 로스쿨이 개설된 대학에서는 더 이상 학부 과정의 법학과를 모집하지 않았다. 대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신입생을 모집하고 2009년 학부에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하였다. 2009년에는 공공인재대학 공공인재학부를 신설하였고, 2010년에 행정학과와 자유전공학부를 통합개편하며 지금의 사회과학대학 공공인재학부가 되었다.